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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9 11:20 2010/03/0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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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마니아 3회
from Designer 2010/03/09 11:02

세계 여러 나라에는 공식 좌우명이 있다. 흔히 국가 문장(紋章) 일부로 쓰이는데, 대부분은 그 나라의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상황을 얼마간 반영한다.

우루과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자유, 평등, 박애’를 좌우명으로 한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는 혁명 전통이 강한 여러 민족국가에서 좌우명으로 쓰였다. 폴란드군은 전통적으로 ‘우리 자유와 너희 자유를 위해’라는 좌우명을 썼는데, 이는 폴란드 군인들이 조각난 조국에서 도망쳐 나와 여러 나라 독립운동에 의용군으로 참여했던 역사를 반영한다.


»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단결에 힘이 있다.’ 민족국가 성립이 늦었거나, ‘민족적’ 성격이 모호하거나, 존폐가 불확실했던 나라들은 단결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 역시 1956년 ‘우리는 신을 믿는다’를 채택함으로써 기독교 국가로 탈바꿈하기 이전까지, ‘여럿이 하나로’라는 좌우명으로 연방국가의 가치를 표현했다.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는 영화 <삼총사> 주제곡이기 이전에 스위스 연방의 공식 좌우명이기도 하다.


» 알바니아
알바니아 ‘알바니아인의 신앙은 알바니아.’ 전통적으로 특정 종교 영향이 강했던 나라는 좌우명에서도 신앙을 언급하는데, 알바니아는 그런 관습을 뒤틀어 세속주의를 강조하는 점이 독특하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복잡하게 뒤섞인 그 나라의 종교적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불(火)의 국가.’ 나라 이름 자체가 ‘신성한 불의 수호자’를 뜻하는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파생했다. 페르시아 제국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에서, 불은 영적 통찰의 매개체로 여겨졌다. 이와 대조되면서 아름다운 좌우명으로, 아프리카 국가 보츠와나의 ‘비’(雨)가 있다.


» 벨리즈
벨리즈 ‘나는 그늘에서 번성하리라.’ 여기에서 ‘그늘’은 벨리즈의 상징 마호가니 나무이다. 본디 영국령 온두라스였던 이 중앙아메리카 국가는, 17세기부터 영국인들이 마호가니 나무를 베어 가는 곳이었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조금 역설적으로 들리는 좌우명이다. 이처럼 긍정적이고 힘차야 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나는 예로, 네덜란드의 ‘나는 견딜 것이다’와 룩셈부르크의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남고 싶다’도 있다.


» 노르웨이 왕실
노르웨이 왕실 ‘모든 것은 노르웨이를 위해’. 그런데 전통적 경쟁국인 스웨덴 왕실 좌우명을 이어서 읽어 보면 재미있다. ‘결국은 스웨덴을 위해’.


» 영국
영국 ‘신과 내 권리’. ‘신’은 예의상 붙였고, 방점은 ‘내 권리’에 있는 듯하다(여기에서 ‘나’의 정체는 불분명하지만). 그런데 이 좌우명은 사실 잉글랜드 것이고, 영연방 일원인 웨일스의 좌우명은, 슬프게도, ‘웨일스여 영원하여라!’이다. 현존하지는 않지만, 현대 독일 형성에 중추적 구실을 한 프로이센의 좌우명 ‘각자에게 각자 몫을’도 권리를 강조한다. 좌우명에서 정책적 지향을 읽게 한 실용주의가 돋보인다.


» 산마리노
산마리노 ‘자유’. 나라가 워낙 작아 긴 좌우명을 적을 자리가 없는 걸까? 간결하기는 과거 뉴질랜드 좌우명, ‘앞으로!’도 뒤지지 않는다. 이처럼 광고대행사에 의뢰한 듯 현대적인 좌우명으로, 에스토니아의 ‘긍정적으로 놀라운’, 스페인의 ‘저 너머 더 멀리’, 대한민국의 ‘다이내믹 코리아’가 있다.

최슬기·최성민/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2010/03/09 11:02 2010/03/0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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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와 민
from Designer 2010/01/22 09:17

[Lecture] Sulki & Min from Mr Podo on Vimeo.

2010/01/22 09:17 2010/01/2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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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사그마이스터의 2008년 KIDP 강연을 바탕으로 당시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2학년 학생들과 함께 작은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 결과물이 미디어버스의 도움으로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현재 아트선재센터 1층 더북스에서 10,0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구입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info@iamjae.com로 문의메일 주세요.

책 디자인: 김영민, 이경, 이령화, 이보리


http://iamjae.egloos.com
2010/01/12 13:59 2010/01/1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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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사그마이스터
from Designer 2010/01/01 18:56

사그마이스터는 1980년대말 디자이너로서 첫 발을 내딛은 이래 최근까지 주도적인 유행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자적인 양식을 고집하면서도 보는 이의 시각과 감성에 호소하는 인상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디자이너로 평가 받아 왔다.
그는 주로 문화 및 연예계 클라이언트들을 상대로 그래픽 및 패키지디자인을 해왔는데, 그의 주요 작품 중에는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비틀즈(The Beatles)의 CD앨범 커버디자인, 에니 콴(Anni Kuan)의 패션디자인 콜렉션 홍보물 디자인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4번이나 그래미상에 지명되었고 대부분 국제 디자인상을 받았을 만큼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200년까지 자신의 작가적 기질을 고집스럽게 즐기는 실험과 전위적 디자인을 강조해 온 사그마이스터는 이제 자신의 새로운 위치를 묻고 있다. 이제는 한 개인으로의 직업디자이너가 아닌 자신의 작품이 세계의 여러 대중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인식한 시점에서 그는 이제 새로운 관심과 영역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 본격적인 계기가 된 것은 2001년 세계를 놀라게 한 9.11 뉴욕 무역센터 테러사건이다. 그는 2002년 워싱턴에서 있었던 한 회의에서 “디자이너도 사회에 정서적, 기능적 기여를 하여야 함을 깨달았다.”라 밝혔는데, 실제로 테러 현장에서 주워 모은 금속파편들을 새롭게 디자인한 가슴핀으로 구호성금 모으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렇듯 그의 최근 관심은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향하고 있다.




스테판 사그마이스터는 6가지로 제안하고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뉴욕의 퀸스에 있는 PS1에 가면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이 만든 조각품이 제일 위층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작품은 매일 해가 질 무렵에 천정이 열리도록 되어있는 네모난 방에 있다.
그 공간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으나 닫힌 느낌을 준다. 하늘이 프레임 안에 짜맞춰지고, 길다란 벤치에 앉아서 하늘의 색이 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내가 이 방에 들어갔을 때 내 목소리가 자동적으로 속삭임으로 변했는데, 그 정도로 그 안에는 신성한 성전의 느낌이 있다.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 겪은 내 경험을 되새기게 해야 할 것이다.
역시 PS 1에서의 경험이다. 앤 해밀턴(Anne Hamilton)의 조각이 전시되어있다고 전시장 지도에 표기되어 있어서 작품을 보러 갔는데 하얀 벽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안내 데스크로 가서 물어 보았더니 작품은 분명히 거기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 갔지만 여전히 그 하얀 벽 외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 벽이 젖어있다는 것이었다. 아주 자세히 그 벽을 들여다보니 굉장히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작은 물방울이 천천히 새어 나오더니 이 물방울이 점점 커져 벽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가 되었는데, 물방울들은 계속 나오면서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갔다. 어떤 물방울은 중간에 멈추고 또 어떤 물방울은 속도가 빨라지기도 한다.
나는 나중에야 이 작품의 제목을 알게 됐다. <울고 있는 벽(Crying Wall)>

그들은 열정과 책임감을 보여준다.
57번가의 한 갤러리에 그의 세대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할 것이며 확실히 가장 값비싼 독일 작가인 안젤름 키퍼(Anslem Kiefer)의 전시를 보았다. 그의 작품 한 점은 백만 달러가 넘는다.
몇 년 전에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을 보았는데, 그는 굉장한 대작의 캔버스 작품들을 전시했다. 사이즈가 60 x 15 피트(feet)까지 되는 것도 있었다.
뉴욕의 매리언 굿맨(Marian Goodman) 갤러리에서는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그 작품으로 전시를 열었다. 작가는 둘둘 말린 캔버스 작품과 틀에 넣은 작품들을 마구 섞어 20 피트나 되도록 쌓아 올렸는데, 모든 작품들은 그 무게에 의해 서로 파괴되고 있었다.
하얀 벽에 작가는 분필로 이렇게 적었다:
20년간의 고독.

의외성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내가 16살 때 콜(Kohl) 수상이 독일에서 당선되었고, 다른 보수파 정치인인 스트라우스(Strauss)가 바바리아 지방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들은 “독일인을 위한 독일”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이민자들이 몰려오는 것을 억제함은 물론이고 더 많은 자식을 낳도록 독일인들을 구슬렸는데, 이로써 독일인의 독일을 만드는 것을 보장하려는 것이었다.
동시에 몇몇의 독일 작가들이 새로운 잡지를 출판하고 “독일인을 멸종의 위기에서 구하자”라는 표제 하에 이 사진 기사를 실었다.
이 남자들의 사진은 논점을 확실히 하는데, 이는 포토샵이 생기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독일인을 구하자.

탁월한 기예 혹은 기술은 확실히 존재한다.
혹은 간단히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그처럼 정통할 수 있다니 하고 놀랄 수 있다.
2주 전 스위스에서 스위스 화폐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를 만났다. 여기서 엿보이는 탁월한 기량은 디자인이 아니라(물론 디자인도 좋았지만), 그 인쇄술에 있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인쇄 도트를 디자인했는데, 도트 하나는 각각 레지스터로 인쇄되는 여러 개의 팬톤(Pantone) 컬러로 구성된다.
그들은 1/25000 인치까지 일치해야 하는데, 모든 화폐는 8개의 보안 특징(feature)이 있고, 거기에다 은행만 알고 있는 4개의 보안 특징과 정부만 알고 있는 또 다른 4개의 보안 특징을 더해야 한다. 물론 이런 안보 정책은 쓸모 없는 짓이란 걸 알지만, 이 극도의 강박관념은 정말이지 재미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 혹은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
이 경우, 사이토 마코토(Makoto Saito)가 절을 위해 만든 훌륭한 포스터가 그 예이다.



만일 내가 위의 목록을 따르고, 내 모든 디자인을 그 6가지 요점에 비교하여 맞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감동적인 작품이 나올까?
내 생각에 위의 목록도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하는 방법” 류의 책들이 갖고 있는 문제와 같은 문제를 가진 것 같다. 만일 내가 하나의 디자인을 가지고 어떤 이를 감동시키고 싶다면, 그 디자인은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야 하고, 진실되고 과장이 없어야 한다. 그저 목록을 따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내가 정직하다면, 내 디자인을 보는 관객은 그것이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닌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내 친구들이 내가 진정한지 아닌지를 바로 알아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내가 만일 진실되고, 용기가 있고, 열정을 보인다면, 내 메시지는 전달될 것이다.




디자인 공부를 하고있는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일화 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화는 한 이년 전에 제가 마니토바 (Manitoba)주의 위니펙 (Winniepeg)에서 강연을 했을 때 들은 이야기 입니다. 강연을 마친 후, 그 지역의 디자인 그룹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러 나갔습니다.자정이 지나자 그 회사의 보스는 먼저 일어섰고, 남은 것은 저와 그 회사 직원들이었는데, 그 직원들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정말 실재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맹세 하더군요.
매일 밤을 세며 정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모두들 지쳐있었죠. 그 보스가 보드를 자르고 있었는데, 그 전날 확대하여 준비해놓은 오리지날 사진 위에 얹고 잘라 그 사진에 기다란 컷을 남기고 말았죠. 그 다음날이 프레젠테이션이었는데 어떻게 되돌릴 방법이 전혀 없었답니다. 보스는 굉장히 화가 많이 났고, 그는 엑스-액토 (x-acto)를 집어 들어 사무실을 가로질러 던졌는데, 이것이 스프레이 마운트 캔을 치게됐고, 예전에 물리 시간에 원동력에 대하여 배웠던 대로, 그 스프레이 캔은 강력한 소용돌이를 치며 되날라와 보스의 얼굴에 정통으로 스프레이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당신 생각에 그래픽 디자인 필드에서 석사 학위 등등의 교육을 받는 것이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까?
아니오,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많은 디자이너들은 굉장히 적은 디자인 교육을 받았는데, 티보 칼만 (Tobor Kalmann), 제임스 빅터 (James Victore)등이 그런 디자이너 들입니다.
근데 저는 디자인 학교 생활을 아주 즐겼죠.

풀-타임 직업을 찾는다거나 미래 클라이언트에게 연락을 하려고 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 하시겠습니까?
정말로 일하고 싶은 몇몇의 스튜디오나 클라이언트에게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우편물을 만들어 발송하십시오.
당신이 사는 도시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규모가 큰 3곳의 스튜디오나 클라이언트만을 찾지는 마십시오.
또 자신의 이력서를 첨부한 이메일을 500여 군데에 보내는 행동도 하지 마십시오.
좀더 많은 곳에서 연락이 올지는 모르나 정말 자신이 일하고 싶은 곳은 아닐테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원했던 일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했었나요?
제가 일곱 살 때 저는 성당의 복사 (altar boy)여서 신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열 다섯 살 때는 서투른 밴드에서 활동했는데,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고 싶어했죠.
내가 진짜 디자인을 하게 됐을 때 저는 서른 살 이였는데, 앨범들의 사이즈는 줄어있었고 딱딱한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들어있더군요.
뭐 그래도 좋았죠.

포트폴리오 안에 들어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좋은 작품이 있어야죠.
제 생각의 좋은 작품이란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주 잘 나타나게 제작된 작품인 것 같습니다.

당신의 회사에서 함께 일할 디자이너를 뽑을 때 보는 점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좋은 포트폴리오를 가진 착한 사람입니다.
이 두 가지는 동등하게 중요한 자질입니다.
저는 탤런트는 굉장하지만 성격이 나쁜 사람과는 일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또, 저는 제작품을 복사하기 보다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습니다.

몇 점이나 있어야 할까요?
만일 작품이 훌륭하다면, 몇 점이 들어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잘 모르겠는 경우, 적은 것이 더 좋습니다.
10점의 좋은 작품이 10점의 좋은 작품과 7점의 그저 그런 작품이 든 포트폴리오 보다 훨씬 더 나은 포트폴리오를 만듭니다.

포맷은 어떤 것이 좋을까요?
마찬가지로, 어떤 포맷을 사용하든 문제는 되지 않지만,
제가 권장하고 싶은 것은 17 x 22 보다 작은 사이즈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없어도 잘 진행될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스튜디오는 포트폴리오를 전달만 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스케치나 작품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요?
훌륭하다면 좋겠죠.
보는 이로 하여금 너무 깊이 있는 관여를 요구하는 작품은 많이 넣지 마십시오.
저는 많은 이들이 한 일분 여 만에 포트폴리오를 검토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장문의 캡션이나 작품 설명은 대부분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또 가장 나쁜 일은 무엇일까요?
가장 좋은 일:
자신이 고용주의 마음 자세를 가져보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 회사가 필요한 어떤 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 것을 그들의 입장에서 보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이 조언은 제가 프랫 (Pratt Institute)에 다닐 때 헤드 헌터 한 분이 우리들에게 했던 말인데 저한테는 아주 훌륭한 충고였죠).
가장 나쁜 것:
받는 이의 정확한 성명없이 받으시는 분께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이력서를 500여군데에 내보내는 것이죠.
그런 문구로 시작되는 이력서는 바로 휴지통으로 직행합니다. 만일 지원자가 내 이름을 알아보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난 그 지원자를 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는거죠.

당신이 비엔나에서 응용 미술대학을 다닐 때와 프랫에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는 수업을 받을 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혹은 그냥 일반적으로)
제게는 디자이너로써 미술사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학교에 다닐 때, 그 쪽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나중에 혼자서 배워야 했죠.

뉴욕의 스쿨 오브 비쥬얼 아트의 교수로 디자인 원칙, 직업 윤리, 혹은 영감에 대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무엇입니까?
너무 많지만 그 중에 하나를 들자면 자신이 잘 못하는 것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벌써 다 알고 있는 것이니까요.





Q. 디자이너가 되도록 한 이유는?
15살 때 밴드에서 활동했었는데, 그 때 좋은 앨범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나의 첫 CD 커버 디자인은30살 때였고, 디자인에 대한 여러 방면에 관심을 갖게 되었었다.

Q. 그래픽디자이너가 스튜디오를 열 경우, ‘소규모’로 유지하라고 충고하셨는데, 그 이유는?
내가 디자인스튜디오를 열 때, 스승인 티보르 칼만(Tibor Kalman)이
‘디자인 스튜디오를 경영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은 규모가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해주었었다.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경우에는 아주 좋은 충고였다.
소규모로 운영함으로써 얻어지는 여러 좋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자기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콩에서 잠시 일을 할 때, 매니저로 일을 하게 되었었는데, 일하는 내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내가 만약 경영에 관심이 있었다면, 경영대를 갔을 것이다. 난 디자인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경영보다는 직접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는 게 더 좋다.
둘째는, 내가 직접 디자인하여 클라이언트를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 디자이너와 고객이 만나지 못하고, 중간에 기획자나 마케터가 전달하기도 하는데. 이는 좋은 작업을 내기 위해 클라이언트에게나 디자이너에게나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이 경우 오래전 회사를 나간 디자이너의 작품을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주게 되는 불상사도 벌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바로 듣고, 디자이너가 바로 설명할 수 있는 직접적 커뮤니케이션이 나을 것이다.
셋째는, 고정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다.
이 점은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에게도 좋은 것을 줄 수 있다.
고정비용 때문에 클라이언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많은 작업을 받아야하기도 하다. 그러나, 일단 금전적인 문제에 구속되지 않으면, 디자인작업을 선택해서 할 수 있다.
좋은 주제와 의도를 가진 작업들을 선택해서 할 수 있으므로,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Q. 그래픽 디자인 필드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인용구는 무엇이며 또 누가 한 말입니까?
“만일 당신의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다면, 강아지를 한 마리 넣으십시오.
그래도 안된다면 강아지에게 밴드를 붙이십시오.”
노만 록웰 (Norman Rockwell)

Q. 그래픽 디자인을 본업으로 할 생각을 하고 있거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한가지 좋은 충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만일 진짜 그래픽 디자인을 사랑한다면 공부해야한다.
미술 작가가 되고 싶은데 (혹은 도예가..)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실치 않은 보증 때문에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항상 더 잘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돈도 벌게 될 것이다.

Q. 일정 관리를 어떻게 하십니까?
규칙적으로 나눠서 일한다.
마감기한이 되기 전까지 어떤 정한 시일 내에 어디까지 마쳐야 하는 가를 제시하는 내 자신을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 이유는 나 스스로가 그런 압박감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가 없었던 시절에 나는 매주 목요일 아침마다 3시간 안에 12페이지의 작은 책자를 동반한 CD 커버를 만드는 연습을 했는데, 이는 이러한 새로운 제한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실험해 보기 위해서 였다.
과정이나 결과가 모두 만족스러웠으나, 결정은 다르게 됐고, 재료도 다른 것들이 사용되었으며 이미지도 틀리게 전개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클라이언트가 누군지 확실한 경우에는 처음부터 모든 것이 정해져서 시작이 된다.

Q. 음악 앨범작업을 많이 한 당신은 패키징이 좋아서 음악을 구입하겠습니까?
그렇다. 난 항상 그렇게 해왔다.
게다가, 처음에 놀랐던 것은, 좋은 음악을 항상 이런 방법으로 찾았다는 것이다.
물론 좋지않은 디자인이 사용된 좋은 음악도 많이 있겠지만, 멋진 패키지로 된 음악 대부분이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음악이 좋아야하는 것은 불변이다.
음악은 형편없는데 앨범 재킷만 멋지다면 결코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그 둘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CD는 음악을 시각화해야하는 것이고, 음악적 분위기, 가사를 잘 담아내야하는 것이므로, 그 기본인 음악이 좋아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Q. 웹은 하지 않는가?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처음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오프라인이고,
개인적으로 주위에 흔히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웹은 사라지기 때문에 영구성이 낮은 것 같다.
또.. 나이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Q. 최근의 본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계 디자이너 Jee Lee의 포스터다.
자신에 작품에 만화의 말 풍선을 그려놓고 뉴욕 행인들이 빈칸에 아무 말이나 적게 한 뒤, 그것을 다시 사진을 찍어 만든 포스터였다.
이 작품은 클라이언트에게 또 다른 컨셉을 전달하게 되었고, 디자이너에게 역시 발상의 전환을 주었고, 대중에게는 또 다른 재미를 준 그래픽 작업이라 생각된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제품의 포장 디자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언젠가 콜라 캔, 그리고 나를 디자인계로 이끌었던 밴드 킹 크림슨의 앨범 재킷을 만들고 싶다.

 
2010/01/01 18:56 2010/01/0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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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mut Schmid

 

 

헬무트 슈미트는 1942년 오스트리아 생(독일 국적). 스위스의 에밀 루더, 로베르트 뵈클러, 쿠르트 하우에르트 밑에서 공부했다.

독일, 스웨덴, 캐나다 등지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일본에서 바이링구얼 타이포그라피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Emil Ruder의 저서 ‘Typography'는 누구나 한번쯤은 꼭 읽어보았을 것이다.스위스 그래픽 디자인사를 살펴보면 스위스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이해를 조금은 쉽게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제 타이포그래피 스타일>로 대표되는 스위스 타이포그래피의 특징은 스위스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와도 연결된다. 독일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등 다양한 언어가 함께 공존함으로써 어떤 표지판이든 최소 두 개 이상의 언어가 공존한다. 무엇보다 중립국 성격은 디자인 취향에 있어서도 실용성을 중시하며 절대 튀거나 과하지 않다. 최소한의 요소로서 타이포그래피의 내용면을 명확하게 전달하되 그리드와 비주얼 시스템을 이용한 다양한 활용함. 이것이 헬무트 슈미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위스 타이포그래피의 특징이다.

이런 원인 때문인지 슈미트가 일본에서 활동한 작업물들을 살펴보면, 일본어와 영어가 혼용된 작품이나 일본어로 된 로고디자인들을 보더라도 매우 자연스럽게 어우러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책, 광고, 상업적 작업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이론적 설명을 제외하고 이것이 스위스 타이포그래피의 느낌이라는 것을 쉽게 전달받을 수 있다.

대표적 작업으로는 약품 패키지와 오츠카 약품의 포카리 스웨트, 시세이도, ipsa, 아유라를 위한 유브이 화이트 로고마크와 비주얼 아이덴티티 등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이 있다. 헬무트 슈미트는 20세기 타이포그라피에 관한 개론서인 <타이포그라피 투데이typography today>(세이분도 신고샤, 동경, 1980)의 편집자이자 디자이너이다. 또한 타이포그래퍼이자 교육자인 에밀 루더의 학생들이 만든 회고집인 <바젤로 가는 길 road to basel>(로분도, 동경, 1997)의 편집자, 디자이너, 발행자이기도 하다. TM, 아이디어, 베이스 라인, 아이 등 유수 잡지에서 그에 관한 글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AGI(국제 그래픽디자인 협회) 회원.

헬무트 슈미트가 2006년 한국에서 가졌던 전시회의 이름은 "Design is attitude_멋짓은 태도이다"였다. 전시회 당시 가졌던 인터뷰에서 타이포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다.  

 

타이포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무엇인가?

타입페이스(글꼴)이다.
또한 금속조판 시대에는 모든 글자의 자간이 일정했다.
하지만 컴퓨터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게 했고, 그로 인한 오용이 일어났다.

포스터 등이 아닌 페이퍼에서의 타이포그래피라면
'
읽기 쉬운(편한)' 것이 최고의 타이포그래피다.




자간을 변경하는 것이 타이포그래피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나?

지금까지 우리는 500년 이상 유지되어온 금속조판의 시대를 살아왔으며,
그로 인해 그것은 표준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
슈미트는 이러한 이유로 인해 볼프강 바인가르트의 실험적인 작업에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스위스 타이포그래피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청소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타이포그래피는 분명하게 심플해졌다.
막스 빌과 티어 발마가 바우하우스에서 스위스로 그들의 스타일을 가지고 왔으며,
이것이 스위스 타이포그래피 양식의 시초라고 생각한다.




스위스 타이포그래피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디자인은 내용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내용으로부터 우러나올 때, 그것은 진실을 포함할 수 밖에 없다.




볼프강 바인가르트의 작업에 대해

모두가 스위스 타이포그래피 양식을 사용하고, 그것에 익숙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경직되었다'는 의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볼프강 바인가르트의 작업은 그러한 스위스 타이포그래피 양식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많은 물음을 던지게 한 계기가 되어주었다.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타이포그래피를 잘 하고 싶다면 몰두하라.
그리고 개선하고, 또 개선하고, 또 노력하라.
작업은 입에서 나오는것이 아니라 행동에서 비롯된다.



-
헬무트 슈미트와의 인터뷰 동영상 中

 

우리는 왜 타이포그래피에 주목하는가?
타이포그래피가 더 이상 활판인쇄술을 뜻하지 않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매체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종이 지면에서의 타이포그래피 구성을 떠나, 이제는 웹과 휴대폰의 발달로 인해 타이포그래피의 공간영역은 너무나 넓어졌다. 그것이 일상적 공간에서이든, 예술적 공간에서이든 말이다. 하지만, 저변이 확대된 만큼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너무나 쉽게 오용되고 있는 것이 우려되는 현실이다. 창작이나 작업의 자유공간은 넓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를 되새겨보고, 사유를 통해 행동함에 있어 신중을 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어나기를 이 사이트를 통해 한 번쯤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Basel 전시

 

 

 

 

 

Dusseldorf 전시

 

 

 

 

 

Osaka 전시

 

 

 

 

 

Seoul 전시

 

 

Tokyo 전시

 

 

2009/08/03 09:29 2009/08/0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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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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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z 2009/07/20 13:4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선생뉨~~~

안상수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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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7 14:49 2009/07/1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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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라퍼 helmut schmid 방문.

오사카에서 날아오신 귀한 손님.

베이글 사과조림에 반하셨어요.

 http://cafe.naver.com/hiut.cafe?iframe_url=/ArticleRead.nhn?articleid=237 

2009/04/22 16:29 2009/04/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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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티븐 헬러(Steven Heller), 2008년 1월 8일

지난 12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은 제 16대 학장에 존 마에다(John Maeda)를 선임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1996년부터 MIT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현재 MIT 미디어 랩 연구팀의 부디렉터를 맡고 있는 그는, 오래 전부터 마에다는 테크놀로지의 인간화를 주창하며, 디자인과 컴퓨터 과학의 결합을 주장해 왔다.

디자이너로서의 활동 역시 활발히 전개해왔는데, 모션 타이포그래피를 이용한 실험적 작업을 비롯해 카르티에, 구글, 필립스, 리복, 삼성 같은 기업과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개발해왔다. 또한 <창조적 코드 Creative Code> 등 몇 권의 저서를 출판했으며, 최근에 나온 <단순성의 법칙 The Laws of Simplicity>은 총 14개국 언어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RISD의 이번 발표는 디자인 계에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대표적인 디자인 교육기관의 대표라는 지위가 앞으로 마에다의 작업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 그러나 어쩌면 보다 더 중요한 점은, 과연 마에다가 유구한 역사를 대표적인 교육기관에 어떠한 변화를 불러올 것인가에 있다. 오는 6월 그가 학장에 취임하고 나면 이 모든 일이 분명해지겠지만, 그에게서 직접 이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와 향후의 당면 계획에 관해 들어보기로 하였다.

RISD 제 16대 학장 존 마에다

당신의 이력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처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쉽지가 않네요. 당신은 학장 취임 수락 동영상에서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상황을 기꺼이 즐기겠다고 밝혔습니다. MIT 미디어 랩은 당신을 이야기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곳인데요, MIT에서의 경험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MIT라는 비옥한 토양을 떠나겠다는 결정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요.


존 마에다의 RISD 학장 취임 수락 동영상

미디어 랩은 학계의 역사에 있어 독특한 특이점으로, 두 개의 비전이 결합되어 낳은 성과라할 수 있습니다. 즉 70년대부터 시작된 디지털 융합 현상에 대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의 정확한 예언과, 지금은 고인이 된 MIT 학장 제롬 위즈너가 지녔던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인간적 맥락화를 향한 열정이 만나 MIT를 탄생시켰습니다. 미 정부의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위즈너는 그때의 경험으로, 테크놀로지가 인간사와 분리된 진공 상태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제 시작은 미디어 랩이 아닌 MIT의 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MIT 학부와 대학원에서 전기 공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는데, 그 후에 미디어 랩에서 PhD 과정을 밟다가 일년 만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지도교수와 안 좋은 일이 있어 그렇게 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분께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제가 예술학교에 가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우리가 예술이나 디자인 작업에서 종종 ‘행운의 사고’라고 표현하는 일이 실생활에서도 일반적으로 곧잘 일어나곤 하는 것이죠.

이후 뮤리엘 쿠퍼의 빈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1996년에 미디어 랩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만, 1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빈 자리가 여전히 뼈저립니다. 뮤리엘은 수십 년 동안 시각 디자인의 ‘성배’를 찾아 다녔던 인물이니까요. 예전부터 제 관심 분야는 아주 광범위했습니다. 온갖 종류의 매체를 이용한 창작 작업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글 쓰는 것도 좋아하지요. RISD의 학장 자리가 특별히 매력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이후의 관심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미디어랩에는 쿠퍼의 뒤를 이을 만한, 그러니까 저보다 더 젊고 재능 있는 인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틴 와텐버그(Martin Wattenberg)나 벤 프라이, 케이시 리즈 같은 인물들이죠. 이제는 그들의 차례가 되었다고 봅니다. 비주얼 리서치 분야에 있어 제 시대는 지나간 셈입니다. 물론 저 역시 계속해서 그 일을 하고는 있지만요.

대학 학장은 그 학교의 이미지 및 경제적 상태와 결부되게 마련입니다. 그 기관을 대표하는 얼굴이자 기금 조달자의 역할을 맡게 되죠. 그렇지만 이제까지 학계에서의 당신의 활동은 혁신적인 교과 과정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학장의 지위에 요구되는 관례적인 역할과 당신의 창조적 욕구를 어떻게 조정해 나갈 생각이십니까? 달리 말하면, 당신 역시 종래에 익히 보던 전통적인 대학 학장이 되지는 않겠습니까?


라이플메이커 갤러리 전시 준비

미디어랩에서 부디렉터로 일하면서, 오른팔과도 같은 베키 버몬트와 함께 자금 관리를 비롯한 수많은 일을 처리해 왔습니다. 자연히 기금을 조달하고 유치하는 일 역시 제 업무였어요. 비즈니스에 있어 흔히들 하는 얘기가 있는데, 새로운 고객들을 유치하는 데 주력하는 것보다는 한 명의 고객이라도 효과적으로 계속 유지하는 게 더 낫습니다. 최고의 고객이 당신을 새로운 고객들과 연계해줄 테니까요. 제가 앞으로 당면하게 될 기금 조달 관련 업무도 기꺼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아티스트이기도 한데요…

지금까지 제 일은 언제나 디자인과 예술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별 의미 없는 공허한 일을 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만일 ‘행정 디자인’이나 ‘행정 예술’이라는 분야를 새로이 개발해야 한다면 저는 그 일에 도전하러 나설 것입니다. 제가 RISD의 학생들로부터 들은 최우선의 요구 사항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학교라면 행정에 있어서도 그러한 점이 반영되어야 한다, 아니 그것을 요구해야 한다”라는 얘기였습니다. 혁신은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학장 직을 맡기로 결정한 면담 자리에서 어떤 얘기가 오고 갔는지 모두들 궁금해 합니다. 모든 내용을 밝힐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수준에서, 당시 상황을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정말 애당초 저에게 그런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꽤 실현가능한 일로 구체화되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아내 크리스가 아이들(딸만 다섯입니다)에게 “아빠는 그 자리 안 될 거야”라고 호언장담했던 일이 떠오르더군요. 게다가 면담 시간에 30분이나 지각까지 했습니다. MIT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어 빠져나올 수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어찌어찌 다시 ‘부름’을 받고, 상황은 계속해서 전개되었습니다.

마침내 학장에 선임되고 나니, 어떻게 심사위원단이나 조사 위원회, 그리고 이사회까지 모두 다 열성적인 혁신가들로 구성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들에게는 RISD야말로 기꺼이 4차원의 하이퍼스페이스로 도약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일한 학교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던 것이죠. “봐라, 세상아. 우리는 그 어떤 예술이나 학교나 디자인도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라는 외침이랄까요. 그리고 이들이 진정 기꺼이 초공간으로 이동할 단추를 누르고자 한다면, 그 어떤 예술가나 디자이너도 도달한 적 없는,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 제 판단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스타 트랙> 마니아도 아니고 주인공 얼굴이나 겨우 아는 정도지만요.


존 마에다가 좋아하는 행운의 과자 속 문장. "인생 최고의 기쁨은 남들이 할 수 없다고 하는 일을 하는 데 있다."

저는 <스타 트랙> 팬입니다만, 폴 랜드의 말처럼, 당신이 이 일을 실현 가능성 있는 일로 판단하게 된 그 순간, 앞으로 겪게 될 문제들의 해결책 역시 마음 속에 그려보기 시작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당신이 당면하게 될 도전 과제는 무엇일까요?

글쎄요, 저는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커뮤니티를 고안하고 가동하는데 관심이 많고 또경험 역시 풍부합니다. 물론 악수 같은 구식 기술도 사용이 되지요. 그렇게 소중한 가치를 찾고자 매일매일 고민하고, 디자인하고, 노력을 경주하는 중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 현재 상황과 관련해서 좀 더 말씀드리자면, 제 학장 선임 발표와 때를 같이 해서 RISD에 온라인 커뮤니티 하나가 탄생했습니다.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이트인데 One RISD라는 이름의 커뮤니티입니다. 저는 이 곳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제 요구들을 순식간에 현실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인적 자원들과 마주했습니다. 거의 ‘기적의 일꾼들’이라고 할 만한 뛰어난 인재들이 풍부하고, 이들은 디자인 부문의 개선이나 기술적 배치 등 제가 요청하는 사안에 대해 거의 마술과도 같은 능력을 보여줍니다. 학장 선임 발표가 난 지 불과 2~3일이 지났고 바로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오늘만 해도 252명이 이 커뮤니티를 방문했습니다. 학생, 교직원, 교수 모두가 저 같은 ‘애송이 신입생’을 교육하고 있어요. 이는 RISD 온라인 전체 방문수의 7퍼센트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방학 중인데요! 사이트 방문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향후의 더 자세한 계획에 대해서는 나중을 위해 말을 아끼기로 하지요. 죄송하지만 비밀 사항이라서요. 제 꿈은 학장 계의 스티브 잡스가 되는 것입니다(웃음). RISD를 학계의 애플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제가 그리고 있는 비전입니다. 진심이에요.

앞으로 학장이라는 제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창작 활동은 당분간 보류하실 생각입니까? 이 기간이 당신에게는 휴지기가 될까요 아니면 또 다른 분야에서 당신의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 시간이 될까요?

요즘 그 질문을 참 많이 받는데요, 물론 앞으로도 창작 활동은 계속할 계획입니다. 물론 학장으로서의 업무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요. 창작은 제 생명과도 같은 일이니, 앞으로도 간헐적으로 소규모 프로젝트들을 꾸준히 진행할 예정입니다. 최근 리복과 함께 했던 ‘타임태니엄’ 스니커즈 작업이 그런 예가 되겠지요.


리복과 존 마에다가 함께 내놓은 '타임태니엄(Timetamium)' 스니커즈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저는 그 동안 직원이나 어시스턴트 한 명 없이 모든 작업을 혼자서 다 해왔습니다. 무딘 손과 뒤죽박죽인 머리로 책과 이미지, 오브제들을 만들어 왔어요. 그 덕분에 프로젝트의 진행과 관리에 따른 외부의 도움이 그리 필요치 않습니다. 그저 서너 시간 정도만 있으면, 할 일들을 할 수가 있지요. 그래서인지 저는 늘 브루스 마우나 카림 라시드처럼 대형 스튜디오를 갖추고서 과감하고 놀라운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완성해내는 이들이 부러웠어요. 저는 언제나 혼자서 해왔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 이런 작업방식이 그리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에 RISD가 당신을 학장으로 선임한 데에는, 미래를 향한 예술 및 디자인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당신이 보는 예술 및 디자인 교육의 미래는 무엇입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우선이겠지요. 하지만 최악의 방식은 확실합니다. 컴퓨터를 마구 사들여서, 어도비 등등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사방 군데에 설치하는 일이죠. 그러고 나면 정기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는 데 드는 비용만으로도 예산을 다 날리기 십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만부터 터키까지 전 세계 사람들이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이미지와 오브제만을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만드니 결과물 역시 비슷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제가 RISD에 대해 갖게 될 비전은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간에 올해나 내년을 위한 것이 아닌, 향후 10년, 20년 후의 미래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RISD를 MIT 미디어 랩 같은 곳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하십니까? 아니면 새롭게 처음부터 다시 접근하실 건가요?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접근해야지요. 미디어랩은 벌써 스무 살이 넘은 기관입니다. 적시 적소에 설립되어, 디지털 혁명에 있어 대단한 역할을 수행했지요. 저는 좀 더 멀리, 그 이상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RISD의 전통과 역사에 깃든 핵심 정수를 자산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것’에 대한 기술중심적인 접근이 아닌, 보다 ‘바람직한 것’을 대표하는 핵심적인 가치이니까요. 아시다시피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저 새롭기만 한 경험이 아닌, 보다 훌륭한 경험이 아니겠습니까.

향후 디지털 시대의 교수 및 학습 방법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의들이 있습니다. 이미 원격 학습은 상당한 인기와 지지를 받는 모델이기도 하지요. 제도권 교육의 오래된 모델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리라 보십니까? 앞으로 대학 캠퍼스는 어떻게 변모하게 될까요?

앞으로는 두 가지를 모두 취하는 방식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즉 훌륭한 ‘오프라인’의 캠퍼스와 ‘온라인’ 캠퍼스를 모두 가져야 하겠지요. 저 역시 온라인 과정으로 MBA를 취득한 사람인데요, 애초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고 엄격한 과정이었습니다.


마에다의 세컨드 라이프 아바타

비자 카드로 결제만 하면 24시간 안에 학위 증서를 이메일로 전송받는, 그런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2년 간의 그 밀도 있는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앞으로의 교육은 쌍방향적이고 도전적인 방식의 온라인 과정으로 제공될 것이며,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학습용 툴이나 테크놀로지는, 전신을 이용한 70년대의 통신 기술보다 더 낫다고는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원시적인 수준에 여전히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디자이너들이 온라인 교육의 차기 모델을 구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물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얘기는 단지 ‘세컨드 라이프’ 같은 것에 대한 얘긴 아닙니다. (사실 전 가상현실의 신봉자가 아니거든요.)

당신이 RISD의 학장으로 선임된 데 있어 무엇보다 흥미롭게 생각되는 지점은 그래픽 디자인과의 관련성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이 분야는 학계에서 그리 부각되지 못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라운이 아트센터(Art Center College of Design)의 학장이었을 당시, 그는 그래픽 디자인계 출신이긴 했지만 그 자신이 그래픽 디자이너는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래픽 디자인의 교육 방식이 새롭게 재탄생할 때가 되었다고 보십니까?

저는 제가 여러 분야를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꼭 그래픽 디자인에만 결부된 것은 아닙니다. 바꿔 말해, 미래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시한 폭탄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변용할 수 있는 정보의 폭발적 증가입니다. 그 규모는 너무 방대해서 전혀 가늠할 수 없을 정도가 다다를 것입니다. 아마도 책이 발명되기 이전의 사람들은, 대량의 정보를 하나로 묶어 정리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책의 개념적 등가물은 아직까지 발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웹사이트 역시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개념에 정확히 부합하는 대상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덧붙여, 좀 케케묵은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에게 있어 이 새로운 역할은 일종의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게 될 자리인가요? 아니면 본질적으로 비즈니스로서가 아닌, 새로운 아이디어와 모델, 새로운 기준을 배양해내는 일종의 실험실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로 보십니까?

RISD는 단순히 실험실이 아니라, 세계 수준의 대학과 세계 수준의 미술관을 갖춘 기관입니다. 저나 RISD 모두에게 있어 유리한 점은 RISD가 스탠포드나 MIT, 예일 같은 곳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주 작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보면 그만큼 더 기민하고 융통성 있는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미니쿠퍼 같은 매력적인 소형차처럼요. 미니쿠퍼처럼 보이도록 RISD에 줄무늬라도 그려 넣을까요… 음.

그럼 마지막으로, 학장 직을 시작하는 첫 달 첫 주 첫날에 무엇을 하실 겁니까?

아마 컴퓨터를 켠 다음 언제나처럼 녹차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겠지요. 그리고는 가속 페달을 밟고 RISD라는 이 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 수 있는지 지켜볼 겁니다. 2008년 6월에 출발할 테니, 기대해 주세요.


First published by AIGA, the professional association for design. www.aiga.org

2009/03/06 14:29 2009/03/0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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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ㅅㅁ 2009/03/11 09:4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 이제 로드아일랜드는 어떻게 별할까나? 궁금한데요?^^;;
    항상 신선한 소식에 감사합니다!!~